제조물은 전통적으로 유체물 등 동산에 한정되어 있고, 대량생산 경제 사회에서 발달해 온 제조물책임의 기본 원리는 손해를 입은 소비자가 제조물의 결함과 손해 간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. 그러나 제품의 특성이 과학・기술적으로 더 복잡해짐에 따라 소비자가 결함과 손해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지고 있다. 또한, 전통적인 제조물의 정의와 책임 법리는 인공지능(AI)을 포함한 소프트웨어(SW)가 핵심 기술로 사용되는 현대 산업사회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냈다.
이에 EU 집행위원회는 1985년에 제정하여 약 40여 년간 시행해 온 「제조물책임지침」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기 위한 개정지침안을 2022년 9월 28일에 발표하였다. 이후, EU 기구 간 협상을 거쳐 2024년 10월 23일에 유럽의회 의장과 EU 이사회 의장이 최종 합의안에 공동 서명함으로써 EU의 새로운 「제조물책임지침」이 제정되었다.
EU의 새로운 「제조물책임지침」은 제조물의 정의에 AI 등 SW를 포함하도록 하고, 손해의 범위도 기존의 신체적, 물적 손해를 넘어 정신적 손해 및 데이터의 손실 또는 손상까지 확장했다. 또한, 제조사의 제조물에 대한 통제 범위가 제조물의 시장 출시일이나 서비스 투입일 이후에도 확장될 수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결함의 인정 범위도 확대하고 있다. 이에 우리나라도 고도의 디지털 기술이 집약된 제조물의 등장으로 제기되는 새로운 법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EU의 입법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.